때때로 공포영화 중에는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름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저예산 작업에 적합한 장르영화라는 측면이 이른바 ‘B급’이라는 정서와 합치됐을 때, 비록 그 품새는 정교하지 못할지언정 색채만큼은 보기 드문 신선함을 품는 것이다. 그 옛날 저예산 B급 호러물로 활약하던 피터 잭슨과 샘 레이미가 그 취향과 정신을 보전하여 오늘날 할리우드 중심부에 특별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세련됨’에 얽매이지 않았던 왕년 그들의 장르영화는 곧 나름의 성과인 동시에 그들의 색깔을 규정짓는 무언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장르영화의 재미나 특별함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장르영화’라는 명칭과는 달리) 이미 완성되고 규정된 세련미를 좇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다섯 번째 프랜차이즈 작품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은 한마디로 오로지 세련미에 목을 맨 공포영화다. 익숙한 구조, 이미 보아왔던 그림들을 나열하는 영화의 외양은 충분히 미려하다. 하지만 투신자살한 언주(장경아)의 죽음 배후를 파헤치는 것이 영화의 유일한 줄거리인 데에 반해 영화는 이를 오밀조밀히 엮어가며 감춰진 진실을 하나둘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안일한 자세로 일관한다. 뿐만 아니라 피범벅 얼굴로 깜짝 등장하는 ‘언주귀신’에 영화의 모든 공포효과를 내맡기고 이마저도 좀 심하다싶을 만큼 남발하는 구조는 이 영화가 평작 그 이상을 향한 어떠한 야망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1998년 <여고괴담> 1편을 시작으로 무려 다섯 차례나 제작된 <여고괴담> 시리즈는 다섯 편의 작품 모두 다른 감독, 다른 배우를 기용하며 각기 다른 이야기를 선보인 국내 유일의 호러 브랜드다. 재미있는 건 이 브랜드의 최대 가치가 이 같은 무궁무진한 가공 가능성에 있다는 점이다. 앞선 네 편의 작품들이 ‘여고’와 ‘괴담’을 엮은 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학교라는 정치적 공간을 두고 여기에 공포를 가미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무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작들은 학교라는 부정형의 공간을 규정짓는 것도, 공포의 대상을 상정하는 것도, 또 ‘공포’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마저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여고괴담5>가 규정하고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전편을 통틀어 가장 협소하며 그 의미마저도 편협하다. 영화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만으로 배경과 서사는 물론 그들의 동반자살 결의 이유 거의 전부를 직조한다. 또 꽁꽁 싸매고 숨기던 이들의 자살 이유가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의미심장한 지점인 데에 반해 끝내 영화는 이들의 자살 이유에 동조하고 못하고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마저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 <여고괴담5>는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장르 친화적이며 가장 밋밋한 영화다.
물론 다섯 명의 신인 배우(사실은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이라고 해야 정확한)들의 산뜻한 미모만큼이나 영화는 여러모로 안전하고도 검증된 기법에 의존해 꽤 그럴듯한 외양을 선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안전한 방법을 포기하고 캐릭터들을 불가해한 광기로 몰아넣는 후반부는 오히려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논리적인 측면에 있어서나 또 파격적인 전개 면에 있어서 연이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조악한 결말이지만 이는 졸작임을 두려워하지 않은 영화의 유일한 모험수(혹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이기도 하다. 공포영화의 장르 그대로에 안주하며 곳곳에서 김을 빼고 맥을 풀어놓던 영화가 갑자기 ‘똘끼’를 부리는 결말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이다. 이처럼 무색무취의 <여고괴담5>가 단순히 신인 여배우의 등용문으로 10년의 명맥을 가름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색깔이 필요했다. 그것이 과도한 야망으로 끝나거나 혹은 평균 이하 완성도라는 큰 위험을 감수할지라도 오히려 그 편이 더 전도유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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